자리

환대란 타자에게 자리를 주는 행위, 혹은 사회 안에 있는 그의 자리를 인정하는 행위이다.
환대받음에 의해 우리는 사회의 구성원이 되고, 사람으로서의 권리를 갖는다.
김현경, 『사람, 장소, 환대』(문학과지성사, 2015)

“재난 현장에 있는 어린이들을 어떻게 지원할 수 있을까?”
“대피소에 들어갈 수 없는 반려동물들은 어떡하지?”
“이동이 불편한 이재민에게 필요한 게 뭘까?”
“밤이 오면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캄캄할 텐데, 밤눈이 어두운 어르신들은 어떡하지?”
“자원봉사자들도 편히 쉴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1

아이돌봄 놀이쉼터

참사 현장에서 가족 단위의 유가족을 보호하기 위해 마련된 임시 안전 구역.
성인 중심의 환경에서 재난 약자인 아동에게 ‘안전한 품’을 제공하는 정서적 쉼터.

참사 직후, 재난 현장으로 모여든 유가족들. 사고 사실을 확인해야 하는 절차는 길고 복잡하다. 행정·의료·확인 과정에 정신을 쏟아야 하고, 심리적으로도 극도로 취약한 상태다. 그리고 그 안에, 아이들이 있다. 어른 중심의 현장에서는 쉽게 보이지 않는 존재.

2023년 강릉 산불에서도 그 장면은 먼저 반복되었다. 피해 주민 상당수가 고령층이었지만 폐허 속 어딘가에는 분명 아이들이 있었다. 어른들이 재난 상황을 감당하는 동안 누군가 이 아이들을 들여다보아야 하지 않을까? 이 문제를 오래 고민해 온 이들은 재난 현장에 아동을 위한 공간을 만들어 보기로 했다.

이에 참사 현장에서 재난구호 NGO 단체와 자원봉사센터가 협력해 아이들을 위한 공간을 확보했다. 매트와 조명, 파티션, 간단한 장난감들은 민간 기업의 신속한 지원으로 빠르게 채워졌고, 지자체 가족 센터의 협력으로 안정적으로 운영될 수 있었다. 이렇게 공항 한 편에 마련된 ‘아이돌봄 놀이쉼터’는 참사 대응 과정에서 아동을 별도로 보호할 수 있는 최소한의 구조적 장치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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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동물 쉼터

대피소 인근에 마련된, 반려동물이 안전하게 머물 수 있는 임시 보호 공간.
재난 대응의 시야가 ‘사람’에서 ‘생명’으로 확장되고 있음을 드러내는 공간.

재난 현장의 지원 대상은 언제나 ‘사람’이었다. 하지만 최근 재난 현장에 있던 사람들이 새로운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대피소 바깥의 다른 생명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 것이다. ‘사람’이 아니라면 지원을 받을 수 없는 걸까?

최근 산불 재난에서는 반려동물 쉼터와 더불어, 현장에서 구조된 유기견을 위한 보호소까지 마련되었다. 이곳에서는 임시 수용과 기초 케어, 안전 관리가 이루어지며 재난 지역에서 살아남은 생명들에게 다시 살아 숨 쉴 시간을 부여했다.

반려동물 쉼터와 유기견 보호소는 재난 대응 체계가 조금씩 다른 방향으로, 더 넓은 포용력을 안고 나아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산불 피해 지역에서 이동 경로를 밝히기 위해 태양광 조명이 설치된 구조물.
전기가 끊긴 마을에서 주민들의 왕래를 가능하게 하고, 귀로(歸路)를 지시하는 표식.

산불 직후, 임시대피소에 모여든 일시 대피자. 사람들은 내 집이 어떻게 되었는지, 마을이 어떻게 되었는지 너무나 궁금하다. 마을에 수십 년 살아온 어르신들에게 그 불안함과 초조함은 너무나 크기에, 대피소에 앉아 무작정 기다릴 수만은 없다. 언제고 수시로 대피소와 불탄 마을을 오가는 어르신들. 익숙했던 마을길과 담벼락은 이미 어수선하고, 고령의 어르신들에게는 위험한 길이다. 3월 말, 4월 초의 시골 해는 아직 짧아서 어둑해진 길을 오가야 하는 어르신들이 걱정이다.

칠곡군 자원봉사자들은 피해마을 이장님과의 대화 속에서 어르신들의 마음을 일찌감치 알아차렸다. 어르신들이 오가는 길목, 전기도 끊긴 마을에 앙상하게 남은 전봇대마다 태양광 조명을 설치했다. 수시로 마을을 살펴야 하는 이장님도, 어르신들에게도 작은 위로, 큰 도움이 되는 일이었다.

고령자·장애인 등 이동 약자의 이동권을 보장하기 위한 맞춤형 지원 장치.
재난 이후에도 일상 동선을 연결하는 보행 보조 수단.

빠르게 번져오는 불길, 간신히 몸만 빠져나올 수 있었던 찰나의 시간. 집에 있던 보행보조기를 챙길 여력조차 없던 어르신들. 이러한 곤혹스러움을 발견한 이들의 발 빠른 대처로, 필요 물품 목록에 ‘보행보조기’가 추가되어 지원되었다.

이동 약자를 위한 지원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대피소 대부분이 좌식 구조로 운영되면서, 앉고 서는 것부터가 큰일인 어르신들이 오랜 시간 바닥에 앉아야 했다. 이를 본 어느 청년 자원봉사자는 버려진 자재로 ‘리사이클링 좌식 의자’를 만들어 기부했고, 한국중앙자원봉사센터는 간이 식탁 역할을 하는 ‘열매 카트’를 기획했다. 또 대피소와 마을을 오가야 하는 이동 약자 어르신들을 위해 ‘차량 이동 지원’을 생각해 낸 지역도 있었다.

보행보조기, 리사이클링 의자, 열매 카트, 차량. 각각은 다른 이야기 같지만 사실은 재난 이후에도 사람들이 자신의 일상을 이어갈 수 있도록 ‘기초적인 이동 환경’을 다시 세우는 과정이라는 점에서 맞물린다.

진화대원·자원봉사자·이재민 등 현장에 있는 누구나 마음을 내려놓을 수 있는 개방형 쉼터.
‘봉사자도 쉬어야 한다’는 인식 변화를 반영한 회복의 자리.

재난 현장은 지역마다 모습이 다르지만 견뎌야 하는 시간은 유사하다. 이동하고, 기다리고, 다시 움직이는 흐름의 반복. 그 속에서 많은 자원봉사자들은 피해자와 진화대원이 쉼 없이 움직이는 모습을 보며 잠시 자리를 비우는 일조차 망설였다고 말한다.

차마 쉴 수 없다는 그 마음들이 결국 현장 안에 쉼을 ‘공식적’으로 마련해야 하는 이유가 되었다. 그렇게 탄생한 공간이 ‘마음쉼터’다. 텐트 아래 들어선 이 회복 공간에는 테이블, 따뜻한 음료, 간단한 안마기 등이 구비되었다. 초기에는 “대피소에 무슨 마사지가 필요해?” 하는 경직된 시선도 있었지만, 막상 운영되자 반응은 달랐다. 현장의 모두에게 ‘어루만짐’이 필요했던 것이다.

청송 지역에서는 마음쉼터가 가장 공공연한 장소인 로비 한가운데 설치되며 지나가는 이들이 자연스럽게 들를 수 있는 열린 공간이 되었다. 누군가 쉬는 모습을 바라보는 일만으로도 ‘재난 현장에서도 쉬어도 된다’는 메시지가 전달되었고, 이에 따라 ‘마음쉼터’의 의미도 확장될 수 있었다.

이름

오늘날 우리는 수많은 매체를 통해 많은 불행들을 전해 듣지만, 그 불행들은 상투적인 표현들로 이차 가공되면서 그 단독성을 상실하고 일종의 정보들로 추락하고 만다. 너무나 많은 불행이 있고 우리는 그 불행에 무뎌진다. 우리는 ‘불행의 평범화’에 맞서 ‘불행의 단독성’을 지켜내야 한다.

신형철, 「『百의 그림자』에 부치는 다섯 개의 주석」, 황정은 『백의 그림자』, 민음사, 2010.

“각자의 체형과 기호가 다른데, 보급품으로 똑같은 걸 드리는 게 맞나?”
“집에 있던 사진이 모두 사라진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모두 똑같이 생긴 임시 주택을 ‘내 집’처럼 느끼려면 어떡해야 할까?”
“재난으로 무너진 지역의 정체성은 어떻게 회복될 수 있을까?”

재난 피해 주민을 위한 의류 지원 방식 중 하나.
대량 배포가 아닌 선택의 과정을 통해 개인의 취향과 정체성을 회복하는 자리.

재난 현장에 천막이 세워지고, 좌판이 깔리고, 물건이 하나둘 놓이기 시작한다. 그 모습에 주민들은 의아함에 잠시 걸음을 멈추었다. “여기서 바자회를 한다고?” 그러나 이 공간이 물건을 사고파는 자리가 아니라, 피해 주민이 직접 필요한 물품을 선택할 수 있도록 마련된 지원 방식이라는 것이 알려지자 기대와 관심이 모였다.

실제로 바자회가 시작되자, 현장에 활력이 생겼다. 직접 고르고 만지고 선택하는 과정 자체가, 대피 생활 속에서 잃어버렸던 일상의 리듬을 잠시나마 되찾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생활복부터 신발, 가방, 학용품 등 다양한 생활 물품들이 제공되었고 그중 가장 인기가 많았던 품목은 의외로 ‘가방’이었다. 대피 과정에서 기본적인 소지품조차 챙기지 못했던 주민들에게는 무언가를 담을 수 있는 물건이 절실히 필요했던 것이다. 그리고 일부 어르신들은 “나중에 손주에게 주고 싶다”며 어린이 물품도 다양하게 챙겨갔다.

주민들에게 바자회는 생필품 지원을 넘어 ‘다시 살아갈 일상’을 잠시 상상해보는 시간이었다. 침체된 공간에 생기가 돌기 시작한 이 장면은, 재난 대응이 단순한 물자 전달을 넘어 사람의 존엄과 일상성을 회복하는 과정이어야 함을 보여준다.

사라진 기록을 복원하고, 삶의 연속성을 다시 세우는 지원.
재난 이후 끊어진 개인의 서사를 다시 이어주는 작업.

급히 대피해야만 했던 주민들 가운데는 신분증조차 챙기지 못한 경우도 많다. 사진 앨범, 벽에 걸린 가족사진 등 개개인의 삶을 설명해주던 것들이 한순간에 소실되기도 한다. 이러한 상실은 단순한 ‘물건 분실’이 아니라, 사람의 과거와 관계, 생애를 증명하던 기록 전체가 끊기는 경험이 된다.

이 단절을 최소화하기 위해 여러 형태의 사진 지원이 이루어졌다. 신분증 사진 촬영, 고령 주민들에게는 (영정사진이기도 한) 프로필 촬영이 있었다. 이는 기능적 의미를 넘어, 어르신이 ‘지금의 나를 가장 좋은 모습으로 남기는’ 작은 기분 전환이 되기도 했다.

마을 회관이나 경로당에 걸려 있었던 단체 사진을 잃은 주민들은 새로 모여 다시 단체 사진을 찍어 회관 벽에 걸었다. 수해 복구 현장에서는 진흙과 물에 젖은 가족사진 액자를 버리지 못해 손으로 닦아 살리려 했던 봉사자의 장면이 기록되기도 했다.

사진 한 장으로 모든 일상이 회복될 순 없지만 개개인의 시간을 다시 불러오고, 흩어진 서사를 이어 붙이는 다리가 되기도 한다. 사진 촬영 지원은 그런 의미에서 작은 기록으로 삶의 연속성을 회복시키는 작업이었다.

익명화된 대피 공간에서 개인의 존재를 확인하는 기호.
‘집’과 ‘사람’을 다시 연결하여, 거주자의 정체성을 회복하는 행위.

산불피해 주민이 2년간 머무르게 되는 임시주택 단지, 이곳은 멀리서 보면 비슷비슷한 컨테이너들이 무리지어 나열된 하나의 구조물처럼 보인다. 오랜시간 살아온 흔적과 함께 각자의 개성을 가졌던 이전의 집들과는 다르게, 이곳에선 누가 어느 곳에 사는지조차 쉽게 구분될 수 없다.

그런 공간에 한 사람의 이름이 새겨진 문패가 달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똑같아 보이던 컨테이너들은 각기 다른 삶이 깃든 ‘집’으로 나뉘어 보이기 시작한다. 비슷한 구조 속에서 희미해졌던 개인의 자리가 다시 또렷하게 드러난 순간이었다.

문패와 함께 설치된 우체통 또한 우편물을 받기 위한 장치 그 이상이다. 작은 표식에 담긴 존재와 거주를 위한 선언. 주소가 있다는 사실, 누군가 그곳에 산다는 전제가 성립될 때에야 가능한 하루의 기능과 리듬이 이 안에 있다.

재난 지역의 정체성과 경관을 회복하기 위해 주민·외부 자원봉사자가 함께 심은 꽃.
잃어버린 지역의 ‘풍경’을 되돌리고, 지역을 다시 기억하고 연결하는 공동의 행동.

산불은 영덕의 여러 상징적 장소를 다시 검게 그을렸다. 특히 별파랑공원은 이미 수년 전 한 차례 산불을 겪은 뒤 장기간의 복원을 통해 생태공원으로 되살려낸 곳이었다. 하지만 다시 일어난 거대한 산불은 그 회복의 시간을 한순간에 되감아 버렸다.

이후 이 공원에서 ‘진달래 심기’ 활동이 추진되었다. 공원의 상징성을 회복하고, 산불 이후 무너진 지역의 자부심과 공동체 기억을 다시 연결하는 과정이 진행된 것이다.

영덕과 가까운 여러 지역의 주민·봉사자들이 저마다 다른 색의 조끼를 입고 모여들어 언덕을 채웠고, 진달래가 피어나기도 전에 사람들의 움직임이 먼저 ‘꽃’처럼 자리 잡는 풍경이 만들어졌다. 이 현상은 단순한 복구 지원을 넘어, 영덕이라는 지역의 가치를 다시 바라보는 집단적 경험이 되었다. 재난 때문에 이곳을 찾았던 사람들조차 자연과 지형, 공원의 의미를 새로이 발견하고 “다시 오고 싶다”는 소망을 자연스럽게 품게 되었다.

몇 해 뒤, 별파랑공원에 봄이 다시 찾아오면, 이번 재난의 잔흔보다 먼저 대지 위에 자리 잡은 진달래 군락이 사람들을 맞이할 것이다. 이 꽃들은 지역이 스스로의 정체성을 어떻게 다시 세웠는지, 그 복원의 과정이 어떤 형태로 기록되었는지를 보여주는 어여쁜 증거가 될 것이다.

사람

일상의 모든 경계와 구조가 깨질 때, 사람들은 서로의 보호자가 되기 위해 나선다.
리베카 솔닛, 『이 폐허를 응시하라』, 정해영 옮김, 펜타그램, 2012.

“낯선 대피 환경에서 주민들이 혼자라고 느끼진 않을까?"
“내가 저 상황이라면 얼마나 힘들까?”
“날도 추운데, 밥은 넘기고 계신가?”
“내 경험이 다른 자원봉사자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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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상

흩어진 일상을 모으는 공동의 공간.
우리네 시골 마을의 어디에나 볼 수 있던 전통적 공동체의 상징.

임시주택 단지는 외형만 보면, 동일한 컨테이너가 반복적으로 배치된 ‘임시 공간’에 가깝다. 같은 모양, 같은 크기의 컨테이너가 줄지어 서 있고, 자갈이나 콘크리트를 굳혀 다진 바닥에서는 사람들의 생활이 바깥으로 흘러나올 틈이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본디 지역 마을의 삶은 집 안보다 집 밖에서 훨씬 더 끈질기게 이어지는 법이다. 나물을 다듬고, 볕에 곡식과 채소를 말리고, 김장을 준비하고, 담소를 나누는 시간들. 이 모든 소일은 원래 마당과 평상을 오가며 이루어지던 일과들이었다.

그렇기에 ‘평상’은 주민들이 익히 알고 있던 생활의 흐름을 다시 회복시키기 위한 장치가 된다. 큰 나무 아래 설치된 평상 하나만 있어도 임시주택 단지의 풍경은 미묘하게 달라진다. 사람과 사람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곳. 흩어졌던 작은 공동체의 리듬이 다시 스며들기 시작하는 지점이 된다.

조리와 배식을 위한 과업이 아닌, 마음을 나누는 현장.
한국 사회에서 돌봄·위로·연결을 상징하는 정서적 행위.

재난 현장에서의 식사는 단순히 배를 채우는 일이 아니다. 그 자리에 있는 사람을 어떻게 바라보고 돌볼 것인가, 그 태도와 마음가짐에서 시작된다. 무슨 메뉴를 만들지는 그날의 날씨, 작업자의 피로도, 이재민의 건강 상태, 대피소 환경에 따라 고민된다.

쌀을 씹기 어려운 고령자나 요양시설 입소자에게는 부드러운 죽을, 비가 많이 온 날에는 속을 데워주는 따뜻한 국물을, 식사를 잘 넘기지 못하는 이들에게는 지역의 맛을 곁들여 편히 먹을 수 있는 한 그릇을 준비한다.

이러한 한 그릇의 밥은 음식 그 자체를 넘어선다. 그 안에는 “당신을 걱정하고, 살피고 있습니다.”라는 온기 가득한 메시지가 담긴다. 같은 음식을 한자리에 모여 먹는 일은 서걱해진 관계를 다시 엮어내고, 서로 모르는 사람들 사이에도 끈끈함을 다진다.

자원봉사자들이 준비한 식사는 결국 생존 그 다음, 사람이 다시 사람 곁에 머물 수 있게 하는 실마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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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장비

산불 재난을 겪은 이들이 은혜를 갚기 위해 수해 지역에 가지고 온 대형 장비.
겪어본 사람만이 보여줄 수 있는 상호지지의 상징.

수해 현장에 거대한 장비를 이끌고 나타난 사람들이 있다. 행정 기관에서 파견된 이들일까? 아니다. 이번 수해 현장에 중장비를 이끌고 도착한 이들은 행정의 호출이나 공문서를 따라온 것이 아닌, ‘재난의 기억’을 따라온 봉사자들이었다.

의성, 울진 등 산불 피해를 먼저 겪었던 지역 주민들은 과거 도움을 받았던 기억을 바탕으로 “은혜를 갚겠다.”는 마음으로 가장 먼저 수해 현장을 찾았다. 이전의 기억으로 ‘현장에 무엇이 필요한지’ 알았기에 복구 작업은 빠르고 정확하게 이루어졌다.

그 마음은 작업 속도뿐만 아니라, 가지고 온 물품에서도 드러났다. 봉사자들은 중장비뿐만 아니라, 아이스 박스, 대형 선풍기, 작업 도구까지 스스로 챙겨 왔다. 많은 이들이 오가는 복구 현장에서 피해 지역에 부담을 주지 않으려는 세심한 마음의 발현이었다.

‘겪어봤기 때문에 아는 사람들’이 보여준 연대의 풍경은 이토록 거대하다.

각 지역이 자신들의 대표 음식을 보내온 연대의 상징.
멀리서 건네 온 응원.

재난 피해 지역에 거대한 상자들이 하나둘 도착하기 시작한다. 광주에서는 김치, 강원에서는 곡물, 경남에서는 젓갈. 모두 ‘우리 지역에서 가장 좋은 것’을 엄선해 담은 먹거리들이다. 이 산해진미는 배를 채우는 일 일뿐 아니라 지역이 지역을 향해 건네는 사회적 지지를 실어 나르는 일이다.

자원봉사자들은 이 특산물을 함께 고르고, 포장하고, 피해 지역에 전달하는 과정 전체에 참여했다. 이 수많은 과정이 담긴 정성스러운 상자를 열어 보는 순간, 주민들은 ‘먼 곳의 많은 이들이 우리를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체감할 수 있다. 이 감각은 재난 상황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정서적 지지로 작용한다.

재난 현장을 찾아온 특산물은 먹거리 이상의 의미를 품고 있다. 어떤 지역의 맛과 향은 그곳의 시간과 사람, 풍경을 함께 담은 일종의 문화적 언어이기 때문이다. 일상의 기반이 흔들린 사람들에게 이 작은 상자들은 집단적 연대의 장치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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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팅방

재난 현장에서 봉사자들이 정보를 공유하고 돕기 위해 형성된 비공식 네트워크.
경험의 격차를 메우고, 현장 대응력을 높이며, ‘서로 배우는 공동체’를 만드는 소통 구조.

재난 현장에서는 사소해 보이는 정보 하나하나가 중요하다. 지금 현장의 날씨가 어떤지, 어떤 옷을 입어야 하는지, 무엇을 조심해야 하는지, 세심한 준비가 필요하다. 이런 때에는 각 봉사자들의 경험과 노하우가 큰 도움이 된다.

이에 자원봉사센터와 지역 네트워크는 봉사자들이 질문하고, 답하고, 서로의 경험을 실시간으로 교환할 수 있는 오픈 채팅방을 마련했다.

홍성 수해 복구 현장에서 자원봉사자들은 이 채팅방을 하나의 허브처럼 사용했다. “지금 필요한 장비가 뭐예요?”, “장화는 어디까지 물이 차요?”, “여기 진흙 깊어요, 조심하세요.” 봉사자들까리 스스로 주고받는 이 조그마한 정보들은 작업의 효율성과 안전을 동시에 높였다.

산청에서는 더 진전된 장면이 목격되었다. 여러 번의 재난을 겪어본 노련한 봉사자들이 기술과 노하우를 공유하며 현장을 빠르게 복구하는 방법을 공유했다. 의료·사회복지 협동조합이 채팅방을 운영하며 개인 봉사자들을 실제 도움이 필요한 농가·가구에 연결하기도 했다. 행정 시스템이 감당하기 어려운 순간, 지역 커뮤니티가 스스로 연결망을 만들어 재난 대응의 공백을 채운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