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닥불 앞의 여명 (After the Disaster: Dawn by the Fire)
영상에 등장하는 모닥불은 1995년 한신・아와지 대지진 직후, 일본의 예술가들이 정기적으로 열었던 퍼포먼스 ⟨작은 불을 둘러싸다⟩에서 모티브를 가져왔다. 대지진 이후 살을 에는 추위와 폐허 속에서, 사람들은 작은 불을 피우고 둘러앉아 밥을 나누고 대화를 주고받았다. 그 이미지를 주목했던 예술가들은 퍼포먼스를 통해 재난 ‘이후’를 상상하며, 폐허가 된 곳에 생겨날 새로운 공동체의 가능성을 이야기했다. 2011년 동일본대지진이 일어났을 때 대피소에 있던 고등학생들이 “솔직히 지금 기억하는 지진 경험이라면 밤중에 다 같이 모여서 논 것밖에 없다.”라고 인터뷰했던 것과 일맥이 같다. (조선대학교 재난인문학연구사업단, 『‘경계’에서 본 재난의 경험』, 역락, 2023, pp.17-18.)
또한, 이는 리베카 솔닛이 저서 『이 폐허를 응시하라』에서 말하는 ‘재난 유토피아’ 속 공동체와 닮아 있다. ‘재난은 지옥을 관통해 도달하는 낙원’이라고 말한 솔닛은 “많은 사람이 위험과 상실, 박탈을 함께 겪음으로써, 사회적 고립을 극복한 생존자들 사이에 친밀하고 집단적인 연대감이 생기고, 친밀한 소통과 표현의 통로가 나타나며, 든든한 마음과 서로를 물심양면으로 도우려는 의지가 샘솟는다.”라고 저술했다.
그런데 이 책의 리뷰란에 어떤 이가 이런 의견을 달았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는 알겠지만, 재난 피해자를 생각했을 때 이 책은 너무 잔인하다.” 아마 그는 피해자들과 연대하는 마음으로 이런 글을 썼을 것이다. 고통과 죽음, 상실 같은 거대한 어둠(暗) 앞에서 감히 명(明)을 논하지 말자는 그의 말이 십분 이해가 되면서도 왜인지 모르게 서글프다.
아무리 거대한 재난이라도, 그 이후 아침은 온다. 살아남은 사람들이 마주하는 것은 재난 이후의 세계이다. 살아가야 하니까 감히 희망이 필요하다. 아픈 발을 이끌고 긴 밤을 걷고 있는 사람들에게, 애통해하는 마음과 함께 나누어야 하는 것은 작은 불일 것이다.
2025년은 우리나라에 큰 재난이 계속해서 발생한 해였다. 24년 12월부터 이어진 1229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3월 경북 의성군에서 발생해 북부로 확산되었던 초대형 산불, 기록적인 폭염과 호우. 그 속에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상실과 고통이 있었다. 하지만 그만큼 많은 마음이 모인 해이기도 했다. 약 8만 명의 자원봉사자가 곳곳에 모닥불을 피웠고, 아직까지 그 잔해가 꺼지지 않도록 불씨를 지키고 있다.
이 전시는 재난 이후, 수많은 사람이 모닥불 앞에 모여 만든 ‘이후의 일’들을 담고 있다. 우리는 ‘모닥불 앞에 함께 모여 있기에 비로소 가능한 것들’에 주목한다. 여명을 기다리며 긴 밤을 함께 버텨온 이들은, 그 시간 속에서 이전에는 보이지 않던 장면과 마음을 서서히 발견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익숙했던 풍경과 일상이 전혀 다른 결로 다가오는 순간들, 그리고 그로부터 태어난 질문들. 그렇게 만들어진 질문의 방향 끝에는 결국 “사람은 무엇으로 다시 사는가?”라는 근원적 물음이 놓여 있다.
자원봉사 아카이브 기획 전시 ⟨사람은 무엇으로 다시 사는가⟩는 그들이 지켜온 작은 불씨들의 기록이다. 이 불빛을 따라 걷다 보면, 우리 안에 남아 있는 연대의 의지와 회복의 힘 또한 함께 발견하게 될 것이다.
Location. 충청남도 태안, 의항해수욕장